'최식 식모기'로 모발이식 문 연 최영철 박사 타계
- 날짜 201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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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말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끊임없이 연구를 하고 후학 양성에 힘쓴 최 박사가 건강상의 이유로 활동을 접고 자택에서 요양 중 결국 지난 12월 6일 타계했다고 전했다.
최영철 박사는 1985년 당시 모발이식을 위한 식모기를 개발하면서 서울 종로에 도고의원을 운영, 모발이식을 시작해 탈모환자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줬던 인물이다.
이때 만들어진 식모기는 농부들이 봄에 모내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서 그 원리를 이용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최 박사의 성을 따 ‘최식 식모기’라는 이름 하에 미국 모발외과학회의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모낭단위 이식용 식모기는 수술시간의 단축과 자연스런 헤어라인의 연출은 물론이고, 한번에 대량이식도 가능하게 만들어서 기존의 수술방식과 패턴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고, 결국 지금은 세계 각국에서 아주 보편적인 수술방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17일 서울 압구정 드림헤어라인의원 박영호 원장은 “최박사님은 수많은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해 해외에 많은 의사들을 교육시키면서 한국 모발이식의 우수성을 널리 홍보했다”고 회상했다.
최 박사의 노력으로 처음에는 대머리환자에게서 시도됐던 모발이식술은 오늘날에 와서는 헤어라인 교정이나 눈썹, 흉터, 구렛나루 등 모발이 있어야 할 자리에 부족하거나 없어서 고민인 사람들에게 그 적용대상이 늘어나면서 수술을 받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는 “오래 전에 모발이식에 입문해 지도와 가르침을 받았다. 수술을 시행할 때마다 기존의 펀치방식이나 미니그라프트방식의 단점을 보완 개선하여 식모기의 편리함과 그 우수함에 감탄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박영호 원장은 “최 박사님이 생전에 ‘모발이식은 수술이라기보다는 예술작업에 가깝다, 보인다고 다 심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심는다고 다 나는 게 아니므로 항상 궁리를 하고 한 올 한 올 정성을 다해서 심으면서 수술에 집중을 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을 항상 가슴에 깊이 새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